乾坤一擲 愚公移山
換骨奪胎 (환골탈태)
환골은 옛사람의 시문(詩文)을 본따서 어구를 만드는 것, 탈태는 고시(古詩)의 뜻을 본따서 원시(原詩)와 다소 뜻을 다르게 짓는 것①옛 사람이나 타인(他人)의 글에서 그 형식(形式)이나 내용(內容)을 모방(模倣)하여 자기(自己)의 작품(作品)으로 꾸미는 일 ②용모(容貌)가 환하고 아름다워 딴 사람처럼 됨.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낸다는 뜻으로 몸과 얼굴이 몰라볼 만큼 좋게 변한 것을 비유하는 말.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의 뜻이 끝이 없지만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뜻을 추구하려 한다면 도연명이나 두보라 해도 그 교묘함에 잘 이르지 못할 것이다. 뜻을 바꾸지 않고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을 '환골'이라 하고, 그 뜻을 가지고 형용하는 것을'탈태법'이라고 한다.
"환골이란 원래는 도가(道家)에서 영단(靈丹)을 먹어 보통 사람들의 뼈를 선골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탈태는 시인의 시상(詩想)이 마치 어머니의 태내에 아기가 있는 것처럼 그 태를 자기 것으로 하여 시적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환골탈태"란 선배 시인들이 지은 시구를 자기의 시에 끌어다가 쓰는 방법을 의미(意味)한다. 이는 시를 짓는 한 기법이다.
환골탈태를 잘 하려면 고인의 시를 많이 앍고, 전해 내려오는 자료를 많이 수집하여 섭렵해야 하며 항상 자구를 다듬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자칫 모방이나 표절에 머물기가 쉽다.
하늘이냐 땅이냐를 한 번 던져서 결정(決定)한다는 뜻으로, ①운명(運命)과 흥망(興亡)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勝負)나 성패를 겨룸 ②또는 오직 이 한번에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걸려 있는 일
당(唐)ㆍ송(宋)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愈(한유768∼824, 字 :退之, 號 : 昌黎)의 '過鴻溝(과홍구)'의 詩(시)에,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춘원)하니, 용과 범이 지쳐 이 강의 언덕으로 분할하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이라. 억만창생의 생명이 살아있도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라, 누가 임금에게 권해 말머리를 돌릴 것인가?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이라. 진정 한번 던져 하늘이냐 땅이냐로 도전한다.
홍구는 하남성에 있는데, 옛날 秦(진)이 망하고 천하(天下)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을 때 楚(초)의 項羽(항우)와 漢(한)의 劉邦(유방)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곳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초가 서쪽은 한이 차지하기로 협약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때 張良(장량)과 陣平(진평)이 유방에게 진언하기를,"漢(한)은 천하(天下)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도 따르고 있지만, 楚(초)는 군사가 피로하고 시량도 없습니다. 이때야말로 하늘이 초를 멸하려 하는 것이며, 굶주리고 있을 때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것과 같사옵니다."했다.
유방은 마침내 초를 해하(垓下)에서 승리했다. 한유는 이때의 싸움을 천하(天下)를 건 일대 도박으로 보고 회고시를 쓴 것.
臥薪嘗膽 (와신상담)
섶에 누워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怨讐)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臣下)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가 간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宰相)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臣下)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회계의 치욕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뒷날 월나라 왕 구천이 오를 쳐 이겨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굴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天下)의 패자가 되었다.
愚公移山 (우공이산)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할 수 있다는 뜻
옛날, 중국의 북산(北山)에 우공이라는 90세 된 노인이 있었는데,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 사이에 살고 있었다. 이 산은 사방이 700리,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산으로, 북쪽이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했다.
우공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하여 예주(豫州)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는 동시에 한수(漢水)의 남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이 반대하며 말했다. "당신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 내려는 겁니까? 또, 파낸 흙은 어찌하시렵니까?" 우공은 흙은 발해(渤海)에다 버리겠다며 세 아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와 광주리 등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황해 근처의 지수라는 사람이 그를 비웃었지만 우공은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 질 날이 오겠지."하고 태연히 말했다.
한편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 자신들의 거처가 없어질 형편이라 천제에게 호소했더니,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역신(力神) 과아씨(夸蛾氏)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두 산을 하나는 삭동(朔東)에, 또 하나는 옹남(雍南)에 옮겨 놓게 했다고 한다.
'일상다반 > 분류몬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깐! 캔 음료수 뚜껑 닦으셨나요? (0) | 2010.04.01 |
---|---|
경락-맛사지로 뱃살 뺄 수 있다(X), '황제 다이어트' 감량 효과 크다(X) (0) | 2010.03.11 |
건강이 최고---------<> (0) | 2010.03.11 |
독도(Dokdo) 광고...김장훈..대한민국 독도 (0) | 2010.03.03 |
오드리햅번 사생활 사진 공개 (0) | 2010.02.24 |
19살 종호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연~~!! (0) | 2009.02.12 |
심리테스트, 당신의 속 마음을 알아보아요~~!! (0) | 2008.11.26 |